지안( 중국어: 集安)은 지린성의 통화시의 일부.면적은 3408 km², 인구는 약 230,000명이다.
북한의 압록강과 접경해 있고 고구려의 수도이던 졸본성이 있던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안에 도착해서 소고기 불고기
소고기 양지 부위를 직접 불에 구워먹는데 맛이 상당히 일품이다.
지안의 호텔...
1급 호텔이라고 하지만 수학여행지 단체 여관이랄만큼 허름하다.
지안이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건축물 증축이 금지 되었다고 한다.
하여간 화장실 냄새가 복도에 진동해서 여간 고역이다..
지안시 1급 호텔 전경
지안시 중심부엔 국내성이 있다. 그러나 도시 한가운데 있어선지 많이 헐렸다. 이렇게 아파트의 담벼락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고구려 두 번째 도읍지가 하릴없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지안시에 고구려 무덤이 몇 기 있을까. 100기? 1000기? 틀렸다. 무려 1만2000여 기가 있다. 고구려인은 땅의 절반을 주거지로, 나머지 절반을 무덤으로 사용했다더니 실감이 난다. 1500년 넘은 고분이 이곳저곳에 가득하다.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많은 고분이 떼로 모여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지나치는 거의 모든 곳이 ‘고분떼’다.
이 중 통구무덤떼가 1만1300여 기다. 이곳에 장수왕릉, 광개토태왕릉, 다섯투구무덤을 비롯해 그 유명한 씨름무덤(각저총), 춤무덤(무용총)이 모여 있다.
고구려의 제19대 왕인 광개토대왕의 생존시의 칭호는 영락대왕이었다. 11세에 태자로 책봉되고, 16세 때에 왕위에 올랐다. 391년에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영락'이라 함으로써 중국과 대등함을 보였다. 396년에 백제를 쳐서 한강 이북을 차지하고, 400년 이후 여러 차례 연나라와 싸워서 북으로 영토를 넓혔다.
또한, 5만의 군대를 파견하여 신라에 침입한 왜구를 무찔렀다. 이리하여 고구려는 요동을 확보함으로써 만주 지방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남쪽으로는 그 세력이 한강 상류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이렇게 고구려의 땅을 넓혀 놓았을 뿐만 아니라, 나라안의 정치에도 관심을 기울여 정치 제도의 정비에도
노력하였다.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후세 사람들은 그를 고구려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는다.
왕의 업적에 비해서 관리는 너무 허술하다.
이곳이 정말 왕의 무덤인지도 모를만큼..
이 비는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長壽王)이 왕 2년(414년)에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광개토대왕릉 바로 앞 공원에 있다 있다.
비는 각력응회암(角礫凝灰岩)의 사면석이나 자연스러운 모습의 긴 바위 모습이다.
비는 대석과 비신으로 되어 있고, 비신이 대석 위에 세워져 있으나, 대석과 비신 일부가 땅속에 묻혀 있다.
본래 비석만 있었으나, 1928년에 집안현 지사 유천성(劉天成)이 2층형의 소형 보호비각을 세웠고,
다시 1982년 중공 당국이 단층형의 대형 비각을 세워 비를 보호하고 있다
3세기 초부터 427년까지 고구려가 도읍한 지안현 퉁거우평야[通溝平野]에는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와 고구려 최대형 무덤인 태왕릉(太王陵)·사신총(四神塚) 등 석릉과 토분(土墳) 1만 기(基)가 있으나 외형이 거의 완존(完存)한 석릉은 이것뿐이다.
화강암 표면을 정성들여 가공한 절석(切石)을 7단의 스텝 피라미드형으로 쌓았는데, 기단(基壇)의 한 변 길이 33m, 높이 약 13m 이다. 기단의 둘레에는 너비 4m로 돌을 깔았으며, 그 바깥둘레에 너비 30m 의 역석(礫石)을 깔아 능역(陵域)을 표시하였다. 널방[墓室]은 화강암의 절석을 쌓아 지었는데, 천장석(天障石)이 있는 굴식[橫穴式]이며, 2개의 널받침[棺臺]이 있다.
1905년 일본인 학자 도리이[鳥居龍藏]가 처음으로 현지조사하고, 프랑스 학자 E.샤반과 일본인 세키노 다다시[關野貞] 등이 조사하여 《남만주조사보고(南滿洲調査報告)》 등에 발표한 뒤부터 학계에 알려졌다.
돌무지돌방무덤[積石石室墓]은 대체로 3세기 말∼4세기 초로부터 5세기에 나타나며, 기와를 통해서는 4세기 중엽 이후 5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므로 이 장군총의 연대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일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 무덤의 주인공으로는 광개토대왕과 그 아들인 장수왕(長壽王)의 것이라는 두 설이 있는데, 현지 중국 학자들은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보고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광개토대왕.장수왕릉.고구려고군분.고구려성 유적지..
모두 귀한 유적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있으니 참으로 기분이 묘하다..
관리도 중국에 의지하고..
과연 역사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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